TEST SERVER!!

제주MBC

검색

(4.3 리포트-4) 군사재판 없었다?(수정)

김찬년 기자 입력 2015-04-02 00:00:00 조회수 139

◀ANC▶ 4.3 당시 수형인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군사재판은 법적 근거도 없고 절차도 지켜지지 않아 불법재판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게다가 일부 재판은 아예 열린 적도 없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찬년 기자입니다. ◀END▶ ◀VCR▶ 4.3당시 1차 군사재판이 열렸다는 1948년 12월. 국군 제 9연대는 14일동안 871명, 하루 평균 예순 두명을 재판했습니다. 제주 중산간지역에 대한 초토화작전을 마친 9연대가 2연대와 교대하던 시기. 물자와 병력 이동으로 정신이 없을 때 군사재판을 열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이때 재판을 받은 것으로 기록된 수형인 대부분도 재판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INT▶이보연/4.3 수형인(인천형무소 복역) "재판이란 받아본 도 없고, 인천에 가니까 한 사람씩 들이며 7년, 5년, 1년 이렇게 들여보내면서 언도를 하더라고." 당시 군 지휘관들도 군사재판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INT▶서종철/4.3당시 제9연대 부연대장 "그때 당시 무슨 군법회의 있었겠어요. 군법회의는 구성할 수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법무관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군사재판의 유일한 증거인 수형인 명부에도 이상한 점들이 많습니다. 명부가 재판 날짜 순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고 형량에 따라 쓰여 날짜가 뒤죽박죽입니다. 여기저기 고친 흔적들도 발견됩니다. ◀INT▶김종민/전 국무총리소속 4.3위원회 전문위원 "수형인 명부는 군사재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재판이 있었던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서 허위로 작성된 문서로 보면 되겠습니다." 결국, 4.3 수형인들은 실제로 열렸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재판에 따라 목숨을 잃거나 무거운 형벌을 받았고 지금도 전과자라는 낙인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찬년입니다.

Copyright © Jeju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김찬년
김찬년 mbcjeju@gmail.com

취재부장
연락처 064-740-2521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