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어려운 국 끓이기
난 지금이야 30대 결혼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서 별 특별한 것도 없는 나이인 33살에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친정엄마의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남편과는 중매로 만나 남편의 일방적인 애정공세에 연애도 못해봤던 나는 나 아니면 죽게다고 하는 달콤한 말에 홀딱 반해서 남편을 잘 알지도 못한 채 5개월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 때는 나의 꿈이던 선생님을 하고 있었는데, 비록 학원이긴 했어도 얼마나 뿌듯한 생활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남편은 학원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미리 와서 잡지책도 전해주고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길 골목길에서 기다리고, 심지어는 부모님에게 혼자 인사도 드리는 등 아주 적극적이었기에 뿌리치지 못하고 선생님을 그만 두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생각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달콤한 말로 나를 꼬셔 놓고는 막상 일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너무 내가 좋아서 일하러 가기가 싫다고 하였는데 남편은 영업을 해야 하는데 내가 방해가 되니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보니 당연히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게도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낭만적인 남편이 이해되지 않아 내 마음을 많이도 속상하게 했습니다.
난 적지 않은 나이에 새댁이 되어 집주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는 새댁이라는 말을 하기가 쑥쓰러웠습니다.
당연한 살림 공부를 못한 채 결혼한 것이기에 반찬을 만드는 일도 큰 일이었는데 가장 힘든것이 간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아주 커다란 숙제를 내 주곤했는데, 한 번은 소내장탕을 끓여달라는 거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먹어도 안본 국의 재료를 사다주었습니다.
지금도 잘 할 수 없는 소내장탕을 끓이려니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양지는 시커먼대로 그대로 , 곱창은 그냥 물로만 깨끗히 씻어서는 냄비에 넣고 갖은 양념을 넣어 팔팔 끓였는데 결과물은 기름이 둥둥떠다는 물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그 물탕을 먹었습니다.
그러고도 자주 실수를 연발하며 사는 나에게 이번에는 곰탕을 먹고 싶다며 소족을 사 왔습니다.
그것은 내장탕보다 쉬울 줄 알고 저번 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또 큰 솥에 물을 붓고 불에 올려 놓았습니다.
이것도 기름 둥둥 될까 염려가 된 나는 기름이 뜨는 즉시 국자로 퍼서는 개수대에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깨끗하게 한다며 찬물을 틀어서 흘려 보냈습니다.
그 결과 개수대 하수구가 기름으로 뭉쳐 막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장이 난 줄알고 당황하게 되어 남편은개수대를 뜯어보았는데, 그것은 뜨거운 물로 씻어야 했으며 소기름은 국이 식어서 기름이 굳으면 걷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산 공부였습니다.
나중에 시댁에 가서 남편이 시어머니께 일렀습니다.
자기는 밥먹는 시간이 되는 것이 무섭다고 말입니다.
나에게 여러가지 시도를 하게 한 거는 남편이면서 나의 부끄러움를 드러나게 만들곤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엉망이었던 새댁시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