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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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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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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와 나는 주택2층에서 단둘이 산다. 어머니는 올해 82세다. 10월 초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 어머니는 집 앞의 짜장면 집 뒷문에서 나오는 파지를 주워온다면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가셨다. 가지 말라고 말리는 나를 뿌리치고 말이다. 어머니는 왼쪽 팔을 못 쓰셔서인지 평소에도 잘 넘어지는 편이라 늘 걱정이 되곤 했다. 그럼 조심해서 갔다 오시라고 하며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는데 갑자기 "쾅" 소리가 난다. 놀라고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어머니가 계단에서 떨어진 것이다. 나는 곧바로 달려가 계단 밑에 옆으로 누워계시는 어머니 머리부터 살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잡힌다. 머리가 깨지지는 않았는지 또 살피는데 머리카락이 한 움큼 또 잡힌다. 살짝 까지기는 했고 피는 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다리를 살피니 좀 까졌고 피가 약간 나온다. 손에서도 마찬가지로 좀 까지고 피가 났다. 나는 어머니를 안고, 괜찮아, 괜찮아 물어보면서 거봐,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하면서 울먹였다. 간신히 진정하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니 천만 다행히도 괜찮지만 조금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멍이 나타나더니 왼쪽 눈부터 옆구리, 다리까지 시퍼런 멍투성이였다.

계단사고 후, 크게 놀란 나는 어머니 곁에 항상 껌처럼 붙어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단독주택 1층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교차로를 보면서 부동산에 집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아파트가 많은 요즘은 내가 원하는 단독주택 1층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시골에서 오래 사신 어머니를 위해 마당은 있어야 하고 햇볕은 잘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내 걱정을 덜기 위해 계단은 없을 것, 도시가스여야 할 것, 화장실 다니는데 넘어질 만한 턱이 없어야 할 것 등등 원하는 가지 수가 많아지니 그런 집은 없었다. 어쩌다 마음에 약간 드는 집이 나오면 이번에는 돈이 부족했다. 그렇게 한참을 알아보다가 결국 구하지 못하고, 절실함도 조금 가라앉아 올겨울은 그냥 살던 데서 나기로 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집을 구해야 한다는 걱정에 편치 않다.

계단사고는 나에게 어머니를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경각심을 안겨주었는데, 어머니는 예전처럼 자꾸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어 하신다. 파지를 줍고 싶어 하시고 은행 줍는 것을 좋아하신다. 해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은행나무에 매달린 은행이 익어 바람결에 한두 개 떨어질 때부터 12월 다 떨어질 때까지 몇 번을 가다쉬면서 기어이 주워오곤 하신다. 지독한 냄새를 품은 은행을 닦아내고 말리고 까고 볶아 속껍질까지 까서 냉동실에 넣어 놓는다. 그러면 어머니가 애써 주워 오신 것을 알기에 나는 매일 아침밥을 할 때 콩처럼 넣어 맛있게 먹는다. 그걸 올 가을부터 지금까지는 함께 가서 주워오곤 한다. 잘 걷지 못하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함께 줍고 함께 씻어 말린다. 이제 은행나무 잎은 다 떨어져 벌거숭이가 되고 은행만 조금 매달고 있다. 가끔 나오기 귀찮을 때는 빨리 떨어져 없었으면 좋겠다가도, 은행을 주우며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더 오랫동안 매달려 있어달라고 속으로 말한다. 덕분에 바람도 쏘이고 운동도 하게 되어 은행이 밉다가도 고마울 때도 있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쯤 와 계시는 걸까? 자꾸 쇠약해져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보면 자식 된 입장에서 어머니 늙어 가시는 모습이 한해, 한해가 보기가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그런 어머니가 있어서 좋다. 법륜스님은 말씀하셨다. 아이는 따라 배우기가 특징이니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고, 노인은 안 고쳐지는 게 특징이니까 맞춰 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지 마시라고 말리기보다는 함께 바람 쏘이러 나가서 어머니가 눈으로 보면 내가 얼른 주워오곤 한다. 어머니의 고집에 비록 졌지만, 보살펴 드릴 어머니가 있고 그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나를 깨우쳐 주시는 것만은 확실하다. 내년 봄에는 햇별 잘 들고 마당 넓고 계단 없는 1층으로 꼭 이사해서 어머니의 여생을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드리고 싶다.

신청곡 : 양희은- 아름다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