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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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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 00분

공지사항

삶을 다한 물건들

"당신 운동화 새로 샀으니 이 헌운동화 버려도 되지?"
"그렇게 해요"
버리려고 집어 들은 다 해어진 운동화를 바라보니
문득 그 운동화를 사던 날이 떠오릅니다.
이 운동화는 7년 전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사준 것입니다.
그런데 3년 전 제가 일을 시작하며 급히 검정 운동화가 필요해 낡아진 이 운동화를 신게 되었는데
신다보니 발이 너무 편해 밑창이 다 해질 때 까지 신게된 운동화입니다.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때도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가격대비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사러 대전 시내에 있는 상설매장을
온종일 돌아 겨우 구입한 운동화입니다.
그 운동화를 구입하러 다니면서 딸이 맘에 드는 운동화를 덥석 사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저렴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고 환하게 웃었던 딸에게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너 저 운동화 살 때 기억나니?"
"아니, 왜요?"
"그 때 엄마가 더 좋은 것 못 사줘서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아픈 기억이 없으니 참 다행이네"
"그랬어요? 히히"
딸의 대답에 고마운 생각이 들며 문득 지난번에 친정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 어려서 다 떨어진 고무신 신고 학교가는 것 보고 엄청 마음이 아팠는데 너는 기억 못하니? 고맙구나"
하시던 친정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부모마음은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더니 그 말이 맞나 봅니다.
그렇게 7년동안 모녀에게 충성을 다한 운동화를 막상 버리려니 주춤주춤 해졌습니다.

이런 마음에 버리지 못하고 집안 한구석에 쳐박혀 있는 물건이 우리집에는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딸아이가 태어나던 해에 구입한 23년된 청소기입니다.
오래되다보니 호스가 삭아 다 해져 오징어 다리처럼 흔들흔들하는 청소기에
나무젓가락을 대어 테이프로 돌돌 말아 사용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모터는 쌩쌩해 잘 돌아가니 버리기도 그렇고
온 몸을 수술해 미이라같은 모습에 사용하기도 그렇고 해서 한쪽 구석에 세워둔 것입니다.
이렇다보니 차츰차츰 집안이 살아온 날들만큼 고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추억들만 남겨놓고 모두 한번 정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