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시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결혼한 지 3년차 되는 새댁입니다. 아직은 신혼인 우린 허니문 베이비와 함께 달콤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시어머니 덕분에 맛있는 반찬과 김지도 잘 얻어먹고 손녀사랑에 빠진 시아버지 덕분에 이제
두살된 울 아기 통장도 생겼습니다.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고 있는 제가 이렇게 사연을 보내는 이유는요, 참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우신 우리
시할머니때문입니다. 우리 시할머니는 세상에서 아들만 존재해야 한다는 극아들주의이신데요,
시할머니 눈엔 당신의 아들과 손주밖에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시누의 물건을 보고 우리 신랑이 '이야~좋네'
라고 말 한마디만 해도 할머니는 무섭게 달려와 시누에게 '오빠줘라~다 오빠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약간만 신랑에게 기대고 있으면 '떽!!'하고 버럭 쇨르 지르시면서 '그 무거운 머리를 어디에 기대! 아기
숨도 못쉬게..!'하고 혼내키십니다. 하긴 울 애기가 아빠 좋다고 아빠 배위에 올라가는 것도 못봐주시는 우리
할머님입니다. 신랑이 식사중이면 아기와 전 다른 방에 감금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구요? 아기때문에 신랑이
식사할때 방해가 된다구요. 증손녀도 손자보단 예쁘지 않은가 봅니다.
시집와서 가장 황당했던 사건은 저희집 집들이 사건입니다. 제가 못을 못 박아서 아버님께 부탁을 드렸는데
못을 새로 사야겠다며 철물점에 가신다고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나가신 걸 뒤늦게 아신 할머님이
노발대발 안절부절하시며 저에게 쓸데없는 걸 부탁해서 아버지 나가게 했다고 불호령을 하십니다.
당황한 제가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너그 아버지 길 잃어버려서 길 못찾으면 어떡하냐고 낯선 동네라 길도
모를텐데 길 못찾고 못오시면 어쩌냐고..'걱정이 되셔서 자리에 앉아 계시지도 못하십니다. 그것도 아버님은
나가신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들어오시지도 않으십니다. 한 시간여 지난 뒤 아버님이 돌아오셨는데 동네구경도
하고 산책도 할 겸 동네 한 바퀴를 빙 두르셨답니다. 아버님이 애기도 아닌데 이런일로 제가 꾸중을 들어야하나
황당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저녁 시어머니께서 저녁거리를 사신다고 밖에 나가신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누가 '할머니 엄마 지금 밖에 나가신다는데 그건 괜찮아요?'하고 여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왈 " 너그 엄마는
나가서 길 잃어버려도 괜찮다. 애도 아니고 길을 왜 잃어버리노!"하고 혀끝을 차십니다. 완전 황당할 따름입니다.
울 시할머님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조선에 없는 내 손자요, 발에 흙 한 번 안묻히고 키웠오.'입니다.
근데요, 어느 누군들 다 남의집 귀한 아들 딸 아닙니까? 시아버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시어머님이 안계시면
누가 힘들고 외롭겠습니까? 내 아들 내 손주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반려자가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요, 시댁 갔다 돌아오는 길 이유없이 남편의 머리에 크게 꿀밤을 한 대 먹였습니다. 놀란 남편이 '왜?'하는데
'할머니께 이유없이 꾸중들은데 대한 보복이야!! 나 열받으면 그 불똥 누구한테 다 가겠어?'라고 큰소리쳤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내 남편을 어린 시절 예뻐해주시고 아껴주셔서 이렇게 잘 키워주신 점이 감사해 할머니를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옛날 분이니까 하고 이해하려고도 하고요. 하지만 아직까지 시할머니 기세에 눌려
눈치보시는 시어머님이 마음에 걸려 일부러 시어머니 듣는데서 시할머니께 큰 소리로 얘기합니다.
" 할머니 손주 잘먹고 잘사는 건 제 손에 달렸어요!!"라고요.. ^^
010 8549 2809
최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