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우리집
고향 집 우리집
초가삼간 집
돌탱나무가
담 넘겨다보고 있는 집
꿀밤나무 뒷산이
버티고 지켜 주는 집
애기 잘하는
종구네 할아버지네랑
나란히 동무한 집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소나무 같은 집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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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우리집 하고 부르면 전 자꾸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곳 우리시골집이 생각납니다.
꿈에서도 우리집이 나오면 언제나 개조하기전 방두개가 나란히 있고 나무마루에 앉아 할머니,아버지께서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저를 반가이 맞이해주는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명절이 되면 언제나처럼 우리집을 오빠와 같이 출발을 하였습니다.
오빠 차가 없었을때는 국립묘지에서 출발했던 관광버스를 타고 시골 오빠들과 같이타고 내려갔죠.
20년전에 고속도로는 명절이 되면 엄청 막혀서 시골집까지 7~8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고속도로가 막혀서 차가 꼼짝도 않고 서 있으면 가슴이 두근두근 불안해졌습니다.
할머니가, 아버지가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시며 벌써부터 동구밖에 나와서 구불구불한 길에 버스가 언제 올라오나 기다리고 계실텐데...
제가 중학교 졸업이후에 안양으로 언니따라 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우리집에서 가까운 마산으로 보낼려고 했었습니다.
언니가 혼자있기 외로워서 저를 불렀거든요.
저까지 먼곳으로 보내면 자주 볼수 없다며 아버지가 안된다 하셨습니다.
몇번의 실갱이 끝에 결국 언니손을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언니가 있는 안양으로 오빠, 동생과 줄줄이 가게 되었습니다.
일년에 명절두번,휴가때나 우리 시골집에 갔었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쌀을 방앗간에 찧어와서 시루떡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중학교 동창 형순이는 저를 엄청 부러워했습니다.
딸 왔다고 떡해주는 엄마는 저희엄마 밖에 없었거든요.
엄마는 하루종일 농사일을 하시느라 논,밭에 나가 계셨는데 집에 오시면 또 집안일에 저녁늦게 까지 집안일을 하셨습니다. 철이 없었던 저는 오랜만에 시골집에 가면 친구들 만나러 형순이네 가서 하루종일 놀고 들어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친구들이 저를 놀자고 부르면 좋다며 조르륵 달려 나갔다가 잠잘쯤에 들어왔습니다.
명절때는 동창들끼리 모여서 우리집에서,형순이네집에서 아님 제실에 가서 놀았습니다.
저희는 고등학교를 갈려면 외지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대부분 가까운 마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죠.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저희는 고향집에 모두 모이는 명절에는 우르르 몰려 다니며 어울려 놀았습니다.
어떨때는 다른동네 친구들도 저희동네로 와서 놀기도 했죠.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게 되면 엄마는 더 바빠지셨습니다. 딸친구들 대접해야죠. 오빠친구들이 오면 오빠들 대접해야죠.
바쁜 엄마일손을 도와 드렸어야 했는데 어둑어둑 해질때까지 일만 하셨는 우리엄마이십니다.
몇일 있으면 추석인데 시골집에 부모님들이 계신 친구들은 명절 보내려 가겠네요.
친정엄마가 대전으로 오신이후에 우리집은 명절을 혼자서 보내고 있습니다.
할머니,아버지가 우리집에서 식구들이 언제오나 기다릴것만 같습니다.
할머니,아버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시고 계시죠.
신청곡; 나의 옛날 이야기-임상아 , 한잔의 추억-봄,여름,가을,겨울
(작가님 고맙습니다. 하시는 말씀마다 황홀했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 제생애 처음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