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불어 터진 라면에 그만
직장이 있는 사무실은 전형적인 오피스 빌딩이다. 10층 규모의 이 빌딩엔 각종의 병원과 더불어 사무실 외 1층엔 약국과 식당들이 포진하고 있다. 같은 빌딩에 입주한 까닭으로 식당의 메뉴는 당연히 제각각이다. 한식과 중식, 양식 외에도 순대만 전문으로 파는 집도 있는데 그러나 나는 이 식당엔 여태껏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이는 오래 전 순대 전문 식당을 한답시고 깝죽대다가 그만 쫄딱 망한 때문의 앙금이 잔존하는 까닭이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무렵 지인의 꼬드김에 속아(?) 순대전문 식당을 차렸다. 내가 직접 만든 순대가 아니라 지인이 배달해 주는 순대를 받아 파는 이른바 프랜차이즈 형태였다. 하지만 그동안 돈을 주고 밥을 사 먹을 줄만 알았지 정작 내가 밥집 주인이 된다는 건 그 때가 난생처음의 ‘신입’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잠시 화장실에 가 없을 적에 손님이 와서 순대국밥이라도 달라고 하면 겁부터 더럭 났다. 순대국밥에 썰어놓은 파는 얼마를 넣어야 하는지, 또한 고기는 어느 정도를 가미해야 하는지 당최 가늠이 안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행인들에게 순대를 썰어서 팔 적에도 칼질이 서투른 바람에 김밥 옆구리 터지듯 순대 역시도 이를 꼭 닮아서 손님들로부터 지청구를 듣기도 다반사였다. 서당개 몇 년이면 풍월도 읊는다고 점차 나의 순대(국)를 썰고 파는 기술도 나날이 늘기는 했지만 이후 당면한 문제는 장사가 지독스레 안 되는 불황기의 먹구름에 휩싸였다는 거다.
그래서 당일에 못 팔고 남는 순대가 항상 남기 일쑤였는데 그렇다고 이를 냉장고에 넣었다가 이튿날에 다시 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여 그렇게 남은 순대는 인근 상인들을 불러 공짜로 퍼 주고 그에 편승하여 나도 안주 삼아 홧술을 참 많이 먹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부부가 아침 일찍부터 식당에 나와 온종일 파리만 날리는 장사를 하고 귀가를 하면 자정이 다 되었다.
그러면 가엽은 우리 아이들은 그 야심(夜深)한 시각임에도 놀아달라고 투정을 부려 마음을 알싸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도 늦게 귀가했더니 아이들이 불어 터진 라면이 요란스런 주방의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순간 식당을 낸 건 장차 아이들 잘 키우자고 시작했던 것인데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얼굴도 보기 힘들만큼 고생만 시킨다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재간이 없었다. 비록 순대 장사에 있어선 ‘신입’이자 초보였으나 자녀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프로의 의식과 기질을 당시부터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내일 당장 가게 문 닫겠어!!”